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로다 요시타카 (문단 편집) == 위기의 시기 == 덴쇼 6년(1578년), 하리마의 대세력인 미키 성주 벳쇼 나가하루(別所長治)가 오다 가문에 반기를 들자 주위의 여러 세력도 크게 동요하였다. 고데라 마사모토도 이에 호응하여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들었으나 [[하시바 히데요시]]가 이끄는 주코쿠 원정군에게 패배. 이때 간베에를 높게 본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부하가 되기 위해서는 모반자의 성씨를 계속 쓰는 건 좋지 않다 조언하여 이에 간베에는 본래의 성씨인 구로다로 돌아간다. 이후 노부나가의 중신으로 셋쓰노쿠니(攝津國)를 맡고 있었던 [[아라키 무라시게]]가 노부나가에 대해 모반을 일으키고 아리오카 성(有岡城)에서 농성하자 그는 무라시게를 설득하기 위해 단독으로 아리오카 성으로 향한다. 하지만 교섭은 실패하고 역으로 붙잡혀 아리오카 성의 토굴에 갇히게 되었다. 이때 단독으로 교섭에 나선 그가 사실은 내통을 하는 게 아닌지 의심한 노부나가는 그의 장자 나가마사를 처형하라고 히데요시에게 명령했으나 타케나카 한베에의 구명으로 나가마사는 목숨을 건진다. 여담이지만 이 인연으로 양가는 친밀한 사이가 되었으며 간베에는 이후 한베에의 아들 시게카도의 대부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한편 간베에 본인의 고생도 말이 아니어서 포위당한 성의 토굴에 약 1년간 갇혀 있었기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생겼고 이후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 생활이 오죽 처참했으면 [[빠삐용]]처럼 바퀴벌레를 잡아 먹으면서 살아 남았다는 이야기도 있는 데다가 [[매독]]에까지 걸려 머리에 흉측한 부스럼이 생겼다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두건은 이때문에 쓰게 되었다고 하며(상기 초상화 역시 이를 그렸다.) 여러모로 그의 인생 최악의 시기라 할 만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